제4일/그리그 생가

그리그 생가

언제나 사랑으로 2008. 7. 15. 20:00

나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 중 가장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그리그 생가 방문

원래 노랑풍선 일정에는 없었는데 연합투어가  되면서 추가된  코스다..

노르웨이 가이드 김건씨가 첫날부터 작곡가 그리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고  음악: 페르퀸트도 소개해줘서

어느정도 지식을 갖게되었다

 
에드바르트 그리그 (Edvard Hagerup Grieg)
,출생 1843년 6월 15일    사망 1907년 9월 4일
학력
라이프치히국립음악대학교
경력
1980년~1988년 2월 베르겐 하모니언 오케스트라 지휘
1876년 페르귄트 초연    
노르웨이 민족음악파를 창시한 작곡가.
 
원래 스코틀랜드 출신인 그리그(예전에는 Greig) 가문은 그의 할아버지 때 쿨로뎅 전투 후에 노르웨이로 이민하였다. 아버지 알렉산더는 베르겐 주재 영국영사였고, 어머니 게신 하게루프는 노르웨이의 안정된 가문에서 태어나 함부르크에서 음악을 배웠다.
6세 때부터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으며 1858년 바이올린의 거장 올레 불의 추천으로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들어가
멘델스존과 슈만 풍의 음악 전통에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에 늑막염을 심하게 앓았으며 끝내 완전히 치유하지 못했다.
1863년 코펜하겐으로 가서 1864년 노르웨이의 젊은 민족주의 음악 작곡가 리카르트 노르로크와 사귀면서 음악적으로 발전했다.
 
1864~65년 겨울, 스칸디나비아의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설립한
코펜하겐 음악협회 '외테르프'의 창립회원이 되었다.
1867년 사촌 누이동생 니나 하게루프와 결혼했고,
그녀는 그리그의 가곡에 대한 권위있는 해석가가 되었다.
 
 1865~66년, 1869~70년 겨울을 로마에서 보내던 중,
그의 피아노 협주곡에 열광적 찬사를 보낸 리스트와 입센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1866년 크리스티아니아(지금의 오슬로)에 정착하여
노르웨이 정부의 종신연금(1,600크로나)을 받기 시작한 1874년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1885년 베르겐 근방에 '트롤드하우겐'이라는 집을 지었다.

 
노르웨이의 민속 전통에 뿌리를 둔 그리그의 음악은 섬세한 서정 감각으로 유명하다.
 1867~1901년 사이에 10집으로 된 피아노곡 〈서정 소곡집 Lyriske Stykker〉을 작곡했다.
 활기찬 리듬은 민요와 연관이 깊으며, 화성법은 후기 낭만주의 양식에서 발전한 새로운 것이었다.
 
 가장 사랑받는 곡은 〈페르 귄트 모음곡 Peer Gynt〉 작품 23과 〈홀베르그 모음곡 Holberg〉 작품 4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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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그가 연주했던 피아노

 생가 입구의 조형물

 

 

 

 

 


 누구나 잘 아는 노래 솔베이지노래를 작곡한 그리그는 북유럽의 쇼팽이라고 할만큼 피아노를 잘 쳤다고 한다

우리가 생가를 방문했을 땐 일체 사진촬영이 금지되었다.

 피아노와  내부 사진은   다음 검색에서 찾은 것... 

 

 

  생가 들어가는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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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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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곡할 때 즐겨 찾던  오두막과 그리그 동상...

그리그의 키는 약 153센티 정도로 작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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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요르드가 바라보이는  그리그생가 뒷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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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도 밤나무 , 나무를 키울 때  이런 모양이  나오게 한다